안전모 안 쓰는 '자전거 성지', 그들에게 배울 것[독일-오마이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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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모 안 쓰는 '자전거 성지', 그들에게 배울 것[독일-오마이뉴스에서]

오후이야기 0 5,324 2019.02.12 16:51

[독일에서 숨은그림찾기 2] 멀리 가기 위해 느리게 달리는 도시, 프라이부르크 

자전거 전용주차장 내부 프라이부르그 기차역과 연결된 전용주차장. 언뜻 버려진 자전거를 모아둔 고물상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 자전거 전용주차장 내부 프라이부르그 기차역과 연결된 전용주차장. 언뜻 버려진 자전거를 모아둔 고물상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서부원

독일은 자전거의 천국이다. 숫자로만 보면 중국이 여전히 압도적일 테지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감안하면 감히 독일을 따라올 수 없다. 자전거 전용도로와 신호 체계는 말할 것도 없고,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기차와 트램에서 전용 주차 빌딩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자전거의 위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웬만한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은 대개 주차된 자전거에 포위된 형국이다. 집에서 이곳까지 타고 왔다가 기차나 버스로 환승하는 사람들의 자전거들이라고 하는데, 워낙 수가 많아 나중에 자기 것을 어떻게 찾을까 싶을 정도다. 자동차를 분신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독일 사람들이지만, 자전거는 그들의 실질적인 발이 되어주고 있다.

도로 역시 정확히 삼등분으로 나뉘었다. 자동차와 트램이 공유하는 도로와 인도, 그리고 자전거 전용도로. 자동차가 중심인 우리네 도로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자가용이 버스, 트램과 더부살이를 해야 할 만큼 찬밥 신세다. 교통 체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도심을 오가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자전거의 성지,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가
▲ 프라이부르가 '환경수도'롤 불리는 이유 기차역과 트램 정류장, 자전거 전용주차장이 곧장 연결된 모습. 트램이 달리는 육교 아래가 기차역이고, 오른편 초록색 원형 건물이 자전거 전용주차장이다.ⓒ 서부원
  
그래서인지 그들이 자전거를 타는 건 하루 삼시 세끼 챙겨먹는 밥처럼 몸에 밴 습관인 듯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가는 이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아무리 독일의 날씨가 폭우나 폭설이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고는 하지만, 미끄러운 도로를 달려야 하는 위험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객기마저 느껴진다.

자전거의 속도가 자동차만큼이나 빨라 자전거 전용도로 위를 걷는 건 무척 위험하다. 인도와 엄격하게 구분됐다는 걸 간과한 외국 여행자들이 무심코 그 위를 따라 걷다 빈번하게 충돌 사고를 당하는 이유다. 독일에서 자전거는 체력단련용이나 레저용이 아니라 기차와 버스 같은 엄연한 교통수단이다.

독일 어느 도시를 가나 맨 먼저 보이는 게 자전거지만, 그중에서도 독일 서남부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는 '자전거의 성지'라고 부를 만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느 도시에 견줘 숫자가 많아서라기보다 시내에 자동차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자전거가 유독 많게 느껴진다. 건널목의 신호등을 비롯해 거리의 도로표지판도 자전거와 관련된 것이 태반이다.
     
우선,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게 원형으로 된 자전거 주차 빌딩이다. 겹겹이 포개져 있어 마치 자전거 백화점을 연상시키는데, 주차 요금 정산을 위한 무인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출입구 주변은 자동차의 접근이 완벽하게 차단됐다.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까지 각별하게 챙기는 모양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탄 사람들 중에 안전모를 쓴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 놀랍다. 미끄러운 빗길과 눈길에도 어른이고 아이고 하나같이 평상복 차림이다. 독일은 안전모 착용을 법제화하지 않았다. 외관으로만 보면 과연 굴러갈까 싶은 낡은 자전거를 타면서도 별도로 안전 장구를 챙기지 않는 일상은 자전거 중심의 교통 체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얼마 전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도모하겠다면서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흐지부지된 우리나라의 사례가 떠올랐다. 안전모 착용이 안전사고를 줄일지는 몰라도 되레 자전거 이용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거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런 우리나라를 향해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안전의 책임을 자전거 이용자에게 지우기보다, 국가가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안전모보다 안전한 인프라가 먼저 아닐까.

자동차를 중심으로 법령과 교통체계가 굴러가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삼기엔 아직은 무리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세먼지까지 기승이니 자전거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듯하다.

언뜻 자전거와 자동차는 길항관계로 대척점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전거는 철저히 자동차에 종속이 돼 있다. 자동차가 늘어나면 자전거 이용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TV 광고 네다섯 중 하나가 자동차 광고인 현실에서 미래 환경을 생각해 자전거 타기를 생활화하자고 떠들어대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동차가 죽어야 자전거가 산다
 
트램과 자동차가
▲ 트램과 자동차가 '동거'하는 도로 이방인 여행자에게 차도보다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더 넓다는 것이 무척 낯설었다.ⓒ 서부원
 
프라이부르크의 사례를 참고해 보면, 이 점만은 분명하다. 자전거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선 자가용 운전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다. 프라이부르크는 차도를 좁히고 도심으로의 통행을 막아 자동차의 접근성을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자가용 운전자를 대상으로 통행료 등 이른바 '교통혼잡세'를 부과하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대신 기차와 트램, 버스 등을 불편함 없이 연동해서 이용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 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사람들에게 애초 자가용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프라이부르크는 '자동차가 죽어야 자전거가 산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자동차가 '약자'인 이 도시에선 신호등도 별 필요가 없다. 신호등이 설치돼 있지 않은 건널목은 말할 것도 없고, 버젓이 신호등이 작동하고 있는 곳에서도 보행자든 자전거든 차도에 접근할라치면 자동차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건널목과 저만치 떨어져 그대로 멈춰 선다. 그 흔한 경적 소리도 없이, 보행자와 자전거가 건널목을 완전히 벗어난 다음에야 움직인다.

어쩌면 이는 자전거만 한정시켜 생각해 볼 문제는 아닌 듯하다. 세계적인 생태 도시이자 독일의 환경 수도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프라이부르크에서 자전거는 생태와 환경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생태와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과 자발적인 합의가 자동차를 밀어내고 자전거를 트램과 함께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만든 셈이다.

22만 명의 인구에 자전거 대수가 26만 대라는 최근의 통계는 그저 자전거가 많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느린 삶에 대한 공감과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놀라운 환경 감수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모든 마트와 카페, 식당에서 플라스틱과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쓰는 건 자동차를 밀어낸 자전거와 닮았다.
 
프라이부르그 대학의 모습 정면에
▲ 프라이부르그 대학의 모습 정면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대학의 모토가 적혀있다. 그 아래에도 어김없이 자전거가 늘어서 있다.ⓒ 서부원

 
프라이부르크의 겨울 공기는 부러 심호흡을 하고 싶을 만큼 청량하고 상쾌했다. 운동복 차림으로 도심의 도로를 뛰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이는 시민들의 환경 감수성과 연대의식이 가져온 소중한 결과물이자,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그들의 마땅한 권리이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프라이부르크 대학 본관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독일어 글귀가 익숙하다. 서울대에서도 차용하고 있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그 유명한 경구. 자유를 향한 참다운 진리를 궁구하라는 뜻일진대, 적어도 생태와 환경에 관한 한 '프라이부르크 방식의 선순환'이 진리라는 걸 외치고 있는 듯하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며 오늘도 자녀의 등하굣길에 부랴부랴 마스크를 챙겨 씌우는 우리네 부모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날마다 미세먼지 예보에 애면글면하면서도 자동차 열쇠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장바구니보다 플라스틱과 비닐봉지에 길들여진 삶을 성찰해 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당장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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