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 '조금 더 놀다 가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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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조금 더 놀다 가지 않을래요?'

오후愛 0 5,935 2016.08.23 10:03

큰 아이가 두 돌쯤 되었을 무렵, 막내 동생이 놀러 왔다. 

나보다 열한 살이 어린 늦둥이 동생은 부산에서 엄마와 살고 있다. 

내게는 동생과 자식의 중간쯤 되는 느낌으로 

천성이 부드럽고 온순해 사랑스러운 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막내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서 

시집가면 데리고 살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었다. 

아이와 강아지도 덩달아 우리 동생을 좋아했다. 

결 고운 마음은 강아지와 아이들이 먼저 알아보는 모양이다.

 

나의 소중한 막내는 당시 삼박 사일의 일정으로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큰애와 즐겁게 지냈다. 

함께 아이스크림이며 과자도 나눠 먹고 뽀로로 연극도 보러 가고 

종일토록 책도 같이 읽으며 깔깔대더니 

'첫 조카라 그런지 어찌 이리 예쁘냐'며 밤낮으로 물고 빨고 감탄을 거듭했다. 

 

그때 우리 아들은 많이 어렸지만, 막내 이모를 무척 따라서 

'망내 이모, 망내 이모' 외치며 잘 때까지 붙어 다녔다.

 

이모는 엄마 대신이라더니. 

어찌 그리 따르는지 낯을 엄청 가리는 내 아들 맞나 싶을 정도로 

아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모를 반겼고 둘은 며칠 동안 정이 듬뿍 들었다.

 

어느덧 짧은 일정이 끝나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마친 막내가 집을 나서려는 순간, 

우리 아들이 막내 앞을 가로막아서고는 까르르 웃었다. 

서운함을 감추고 억지로 웃는 표정이다. 

아들은 짐을 둘러메고 샌들을 신는 이모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망내 이모,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놀다 가지 않을래요?"

 

우리는 너무 놀랐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말을 잘했었나. 

이렇게 긴 문장을 말한 적이 있기는 한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망내 이모,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놀다 가지 않을래요? 응? 이모."

 

이모가 갈지도 모른다는 다급한 마음에 긴 문장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막내 동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들을 달래고 돌아섰다가 다시 달래길 여러 차례. 

내가 아이 입에 사탕을 물리며 관심을 돌리고 나서야 겨우 발을 뗄 수 있었다. 

그날 동생은 기차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조카 사랑에 눈물짓던 막내 동생은 이제 조카만 무려 넷이다. 

챙길 것도 많고 선물값, 세뱃돈도 많이 든다. 

볼 때마다 엉겨 붙는 아이들이 성가실 수도 있을 텐데. 

동생은 이모 노릇이 그 어떤 일보다 즐겁단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놀다 가지 않을래?' 사건을 말하곤 한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울린단다.

"나는 있잖아, 언니들이 자랄 때 나 많이 예뻐해 줘서 

조카 생기면 약간 질투 날 줄 알았거든. 근데 정말 너무너무 예쁜 거야."

"그랬어?"

"응. 그리고 그날 꼬맹이가 나 집에 간다고 더 놀다 가라며 

눈을 반짝이는데 진짜 마음속에서 뜨거운 게 솟는 것 같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는데 이게 무슨 감정일까. 

정말 이런 게 핏줄이구나 싶더라고."

 

그런데 그거 아니? 그때 우리 아들이 이모 가고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어. 

조그만 배를 불룩 내밀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현관에 서서는, 

계속 문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짧은 팔을 쭉 뻗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어. 

빨리 들어오라고 안고 업고 해도 절대 안 들어오고 기다리더라고. 

이모는 다시 올 거라고. 

그러고 있는 게 처량해서 나도 같이 울었다니까. 

 

참, 그런데 동생아. 

슬프게도 우리 아들은 그날 일을 까마득하게 잊었단다. 

이제 초등학생이라고^^.

 

- 백서우 '삼대육아' 중에서 -

- 따뜻한 하루에서 -

 

 

춘천자전거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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