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수도’ 네덜란드,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다
딸 잃은 언론인 칼럼이 시작, 시민들 점거농성이 만들어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에게 도시를 되돌려주라”
10년 간 교통사고에 죽고 다친 한국 어린이 14만여명
흔히 네덜란드를 ‘세계 자전거의 수도’라고 부른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진심으로 자전거를 즐겨 탄다. 교통 수단 중 자전거가 차지하는 비중이 36% 남짓되고, 평균적으로 1인당 자전거를 1대 이상 가지고 있는 나라. 명실상부 자전거의 왕국이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1971년에 네덜란드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3,300명으로 정점을 찍었는데, 그 중 어린아이가 500명 이상이었다. 1960년대 네덜란드는 온통 자동차의 매혹에 빠져 있었다. 1960년 52만대에서 1971년 275만대로 급증했다. 도로는 자동차와 매연으로 혼잡해졌고, 교통사고가 끊이질 않자 점차 시민의 원성과 불만이 쌓여갔다.
1972년 진보적 색채의 네덜란드 국영TV에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 암스테르담의 오래된 지역 ‘데 페이프(De Pijp)’에 관한 흑백 다큐인데, 한 소년이 가로수 하나 없이 자동차만 달리는 창백한 도로 위를 횡단하며 분노를 쏟아낸다. 푸른 나무도, 뛰어놀 공간도 없는 황량한 도시, 한 해 수백 명의 어린 친구들을 합법적으로 살해하는 자동차 도시에 대한 울분을 어린이의 시점으로 담아낸 놀라운 작품이다. 십수 명의 어린이들이 떼지어 도로를 행진하며 ‘자동차를 길 위에서 없애라!’고 시위하고, 활동가들이 곳곳에서 바리케이드로 자동차를 가로막는 장면들이 기록된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그 뒤를 이어, 한 언론에 강렬한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아이들을 그만 죽여라(Stop de Kindermoord)’.
“피해 아동의 부모들, 잠재적 피해를 염려하는 부모들이여, 단결하십시오. 환경운동가들이여, 우리와 함께하십시오! 아동의 안전은 인도적인 환경을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빅 랑겐호프(Vic Langenhoff)라는 존경 받은 언론인이 쓴 칼럼이었다. 1년 전 그는 딸을 잃었다. 6살의 어린 딸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에 치어 사망한 터였다. 슬픔과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아이들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아버지의 포효하는 칼럼은 곧장 파장을 일으켰다. 언론계와 젊은 정치인들이 지지를 보냈고, 전국의 많은 운동가들이 결집했다. 네덜란드 도시 풍경을 전회시킬 거대한 운동이 막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캠페인의 슬로건도 칼럼 제목을 따 ‘아이들을 그만 죽여라’. 분노한 시민들은 사고 다발 지역을 점거했으며,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거리를 폐쇄했다. 나중에는 수천 대의 자전거로 시청 앞 광장을 점거하고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기도 했다. 80년대에는 더 다양한 목소리로 투쟁이 분화됐다. 자동차를 줄이고, 자전거 길을 확대하고, 대중교통을 강화하라는 것이었다. 어린이뿐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에게 도시를 되돌려주라는 함성이 마침내 네덜란드를 집어삼킨 것이다.
이게 바로 네덜란드가 자전거 왕국이 된 저간의 사정이다. 그들이 유독 자전거를 좋아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도시를 위해 시민들이 발 벗고 싸워서 만든 풍경이다. 한편 1999년 스페인 자치 도시 폰테베드라의 시장에 막 당선된 좌파 정치인 미구엘 로레스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피력했다.
“어째서 노약자와 아이들이 자동차 때문에 거리를 이용하지 못하는 걸까요? 어떻게 사유재산인 자동차가 공공장소를 점유할 수 있는 걸까요?”
해안 도시 폰테베드라는 작은 도시임에도 하루 5만대의 자동차가 경유했다. 높은 교통 사고율, 각종 소음과 질병, 심지어 범죄율도 치솟고 있었다. 미구엘 시장은 주차장을 걷어내고, 시내 주행 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했다. 현재 이 도시 내 4분의 3에 해당하는 면적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다. 2011년 이후로 한 명의 교통사고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걸어서 학교를 다니고 골목을 마음대로 뛰어다닌다. 덤으로, 시민들 삶의 질이 올라가고 도시 탄소배출량이 70% 남짓 감소했다.
네덜란드와 폰테베드라의 변화를 거쳐 최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비전 제로(Vision Zero)’가 실행되고 있다. 아무도 죽거나 중상을 입지 않는 안전한 교통 시스템을 의미한다. 중심가의 차량과 주행 속도 제한, 자전거 도로 확대, 대중교통 강화 등 도시 공공성을 증진시키는 도시 계획인데, 노르웨이 오슬로의 경우엔 학교 주변으로 ‘심장 구역(Heart Zones)’을 설정해 아예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그 결과, 2019년 보행자 사망자가 ‘0명’이었다. 노르웨이 전역으로 이 정책이 확장되면서 2020년에는 국가 전체에서 15세 미만의 어린이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게 됐다. 핀란드의 헬싱키에서도 비전 제로를 시행하면서 2020년에 60년만에 교통사고 사망자 0명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비전 제로는 현재 미국과 호주의 일부 도시에서도 실험적으로 가동 중이다. 라스베이거스 시의회는 올해 초 2050년까지 교통사고를 제로로 만드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국의 일부 도시에서는 스포츠실용차(SUV)와 픽업트럭 등 대형 차량에 대해 증세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SUV가 증가함에 따라 운전자 사상자는 감소하는 대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의 사망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 먼저 도심에서의 자동차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도시 내에서 통상 자동차 속도를 시속 1.5km 줄이면 충돌할 가능성이 6% 감소한다. 더 나아가 주차 공간과 자동차를 줄이고,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넉넉히 넓히고, 공공교통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 축적과 자동차 산업 발전에 경도된 기형적 도시 공간을 민주화하고 공공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어린이들을 그만 죽여라’ 운동에서부터 최근의 비전 제로에 이르기까지의 전환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도시 공간은 과연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바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동안 갈려나가는 그 무수한 목숨과 삶에 대하여.
한국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최근 10년간 어린이 교통사고 사상자는 14만 1552명. 그 중 보행 중 사고가 5만 862명이다. 민식이법이 통과됐지만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율은 여전히 제자리다. 최근 대전 스쿨존 음주운전 사건을 경유하며 스쿨존 내 음주운전에 최대 26년까지 양형 기준을 올린다고 한다. 또, 지겨운 엄벌 타령이다. 문제의 근본을 회피하는 한국의 고질적인 땜방주의다. 조막만한 정의감을 투사하기에는 좋겠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과연 이 도시는 모두가 살 만한 안전한 공간인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장소인지에 대한 대답을 내놓기 전에 이 참담한 비극의 연쇄를 끊을 수 없다.
미디어 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