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발췌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탈 것은 무엇일까? 이 연재 코너가 철도를 주제로 하기에 아마도 정답은 철도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철도는 2위다. 그렇다면 영예의 1위는 어떤 것일까?
바로 자전거다. 그렇다면 이 순위는 누가 정한 것일까? 유엔 국제환경자문기구나 국내외 자전거 생산업체연합, 대한사이클연맹 같은 단체와는 아무 상관없다. 내 맘대로 정했다. 혹시 다른 의견이 제시되더라도 30년간 세계 주류 무료 음주권 같은 것이 제시되지 않는 한 순위를 바꿀 생각은 없다.
자전거는 철도와 비슷한 생의 역정을 겪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개량을 거듭해 번듯한 이동 수단이 되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은둔이 미덕이었던 여성을 햇빛 아래로 끌어낸 것도 철도와 자전거였다. 이로서 세계 인류의 절반은 가정의 울타리를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여성에게 주어졌던 전통적인 역할은 산업자본주의에 의해 균열이 생겼다.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초과이익을 위해 언제라도 하찮은 대우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는 산업예비군, 즉 실업자들이 많아야 했다. 이런 면에서 가정에서 해방된 여성은 좋은 착취 대상이었다. 남성보다 훨씬 적은 임금으로 부릴 수 있었고 도박에 빠져 결근을 하거나 대낮부터 술에 취해 공장장에 대들지 않았다. 어느 사회나 자리 잡고 있는 전통적 여성상이라는 족쇄가 노동자가 된 여성에게 2중의 고통으로 작용했다. 오랜 시간 권력을 행사한 가부장이라는 판사에 의해 여성이라는 형틀을 목에 건 소녀들과 엄마들은 자전거와 철도를 이용해 출근을 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부르주아지 여성들 역시 전통적 여성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는데, 근대 계몽주의가 이 굴레를 깨는 정신적 요소로 작용했다면, 자전거와 철도는 물리적 요소로 작용했다. 숙녀들은 자전거나 열차를 타고 남편의 품을 떠나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자전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근대 산업사회의 중심 풍경이 되었다. 특히 우체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비가 되었다. 경찰은 순찰용으로 요긴하게 써먹었다. 안장 뒤로 머리 높이까지 생선궤짝을 싣고 달리는 시장 상인에게는 돈을 더 많이 벌게 해주는 복덩이였다. 아이들은 체형에 맞춰진 소형 자전거로 골목을 누볐다. 도로의 주인공은 자전거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전거는 도로에서 밀려났다. 이어서 철도가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 위대한 두 탈것을 몰아낸 주인공은 자동차였다. 자동차 산업의 폭발은 도로의 확장을 불렀고 이것은 더 많은 자동차를 끌어들였으며 다시 새 도로를 요구하는 순환운동이 되었다. 자전거는 자동차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완벽한 개인적 교통수단인 자전거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자동차의 효율성은 독보적이었다. 전국적인 고속도로의 확장은 철도도 한물 간 교통수단으로 만들었다.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는 장거리 여행을 위해 역까지 가야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자동차는 자본주의와 인류가 가장 크게 의지하는 산업이자 교통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자동차 천년왕국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류는 어쩌면 자동차로 인해 종말을 가속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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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진보의 장을 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효율 100%를 숭상하는 현대사회, 특히 한국 사회는 수백만 명의 유치원생부터 취업준비생까지 학원에 강제 수감시키는 것 보다 쓸데없이 놀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국익'이라는 우상화된 가치에 보탬이 될 것이다. 근대 산업사회로 접어들던 어떤 시기, 약 300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일부 사람들이 황당한 생각을 했다. '말을 타지 않고도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탈것'에 대한 상상이 그것이다. 이 탈것은 바람이나 증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인간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인간의 힘을 동력원으로 한다면 가장 풍부하면서도 소멸되지 않는 자생적 연료를 갖게 된다. 그야말로 이동의 혁명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구상을 현실로 가능케 할 것인가? 걷는 것이 아니라 이동 수단으로서의 탈것이라면 최소한 마차와 대등하거나 뛰어나야 했다. 보통 사람들이 허황된 망상이라고 비아냥대기에 딱 좋은 생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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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치마를 벗어던지고 레깅스를 입다
자전거의 등장으로 삶이 바뀐 것은 여성이었다. 벨로시페드 시대의 여성 라이더들은 훨씬 더 주목 받았다. 인류가 오래도록 간직해온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한 몫을 했다. 감히 여성들이 버젓이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여행을 즐기는 것을 보고, 말세가 다가왔다고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성들은 자전거를 타기 위해 편한 복장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짧은 치마와 레깅스는 시대의 벽을 뚫는 전위적인 것이었다. 엉덩이를 강조하고 허리를 잘록하게 보이게 해 강제로 여성성을 극대화한 코르셋같은 옷을 입고는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 '전통적인 여성상'을 목소리 높여 말하는 보수적 '꼰대'들이 보기에 자전거 타는 여성들은 불경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여성들이 애인과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시골로 떠나 은밀하고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것은 사회를 더욱 타락시킬 것이라고 떠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공공장소에 여성들이 자전거를 몰고 나타나기 위해서는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무릎을 드러낸 레깅스 차림으로 시내 광장을 질주하는 모습은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이런 신기한 광경이 벌어지면 평소에 여성라이더의 불경함을 외치던 이들도 눈꼬리를 슬쩍 돌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달려가는 여성들의 뒤를 쫓았다. 워싱턴에 있던 여성구조연맹(Woman's Rescue League) 같은 이상한 이름의 단체는 자전거가 불임을 유발하고 정숙하지 못한 옷차림을 조장하며 남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어떤 이들은 안장과의 마찰이 부도덕한 성적 충동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들은 터무니없는 억지였다. 자전거가 확산되는 것도 여성라이더가 증가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자전거 타기는 남녀 모두에게 있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건전한 운동이라는 상식적 사실이 의사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어쨌든 여성들은 늘 당해왔듯 자전거를 타는 과정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기꺼이 감수해야 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여자들이 가랑이를 벌리고 양 다리로 페달을 밟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말을 탈 때 하듯이 두 발을 한쪽으로 모으고 옆으로 타는 것이 규범에 맞는 일이었다. 이렇게 탈 경우에는 여성스러운 긴 드레스를 입어도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 한국 영화 졸작선 작품 중에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채 자전거 뒤 안장에 탄 여성이 나오는 장면들이 있다. 규범적인 여성성을 정형화한 컷이다. 이런 장면들은 영화 후반부 회상 씬에 자주 재등장 한다. 애틋했던 과거의 연애는 '순결하고 청초했던 그녀'라는 프레임 안에 여성들을 가둬놓아야 했다. 남자들이 내면적으로 이상화한 후 사회적으로 주입시켜놓은 공식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맛을 알아버린 여성들의 입장에서 빅토리아풍의 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모은 채 안장 뒤의 연결의자에 앉아 남자의 허리를 잡는 것은 고리타분한 일이었다. 과감하게 치마 단을 자르고 종아리와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었다. 이런 복장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여 양손으로 핸들을 잡고 세상과 맞서는 일이 훨씬 짜릿한 일이었다. 자전거는 그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혼자 타야만 하기 때문에 탑승자가 누구이든 독립적인 운전자여야 했다.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들의 도움이나 간섭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이처럼 속이 후련한 일을 경험하는 것은 자전거와 철도의 등장 이전에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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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의 끝판 왕' 같이 보였던 하이 휠 시대는 여러 엔지니어들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새로운 자전거가 도입되면서 막을 내린다. 현대의 자전거와 거의 유사한 이른바 '세이프티 자전거'의 등장이다. 세이프티 자전거는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 적당한 높이를 가진 직경의 바퀴를 적용함으로서 승하차의 편의성을 대폭 높였다. 여기에 더해진 혁명적인 진화였던 고무타이어의 적용은 승차감과 속도를 대폭 높였다. 또 하나의 획기적인 개량은 체인의 도입이었다. 프레임 아래 커다란 체인 휠을 장착하고 여기에 페달을 달았다. 페달과 연결된 휠은 체인으로 뒷바퀴 축에 장착된 스프라켓에 연결되었는데 이로서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자전거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하이 휠 자전거는 앞바퀴 축에 연결된 페달을 밟는 것으로 전륜 구동이었는데 체인을 사용하게 되면서 후륜 구동 식으로 바뀌었다. 이 후륜 구동 식은 자전거의 발전을 크게 이끌게 된다. 뒷바퀴에 체인으로 연결된 스프라켓의 구경비를 다르게 해 견인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의 최대 난제였던 경사로 등판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됐고 속도 유지 능력도 향상됐다.
새로 등장한 세이프티 자전거는 반짝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다 말 것이라는 평가를 뒤엎고 하이 휠 자전거를 도로에서 몰아냈다. 마침내 자전거가 꿈꾸었던 최초의 이상, 즉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탈것이 실현되고 있었다. 자전거의 효용성이 증가하자 사회 여기저기에서 자전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우편, 상품배달, 치안유지, 군대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됐다. 철도노동자들은 선로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자전거를 개량하여 수고를 덜었다. 자전거는 젊은이들에게는 속도감을, 여성들에게는 자유를, 서민들에게는 큰 즐거움과 실용성을 주었다. 비로소 부자의 장난감에서 가난하고 평범한 시민들의 탈것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자전거의 보급이 확대되자 젊은 남녀가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나가는 도덕적 타락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일요일 주행이 확대됨에 따라 수입이 줄어들게 된 목사들과 종교계 지도자들은 깊은 근심에 빠졌다. 현저하게 줄어드는 교회 출석률은 신도들이 자전거라는 이름의 사탄에게 유혹된 결과였다. 목사들은 하나님이 조금이라도 더 잘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기도했다. 그러나 자전거가 거룩한 주일을 훼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목사들의 고발은 하나님의 귀에까지 전달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자전거는 예루살렘은 물론 사마리아 땅 끝조차 뛰어넘어 전 세계에 퍼지는 놀라운 행진을 거듭하게 된다.
이 글에서 다룬 자전거에 대한 내용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두 바퀴 탈 것>(데이비드 V, 헐리히, 알마출판사)를 참조했음을 밝힙니다.(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