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등까지 식혀준다. 하지만 오르막길은 몇 분 오른 것만으로도 다리 힘이 풀린다. 초보라 처음 자전거에 올랐을 땐 균형을 못 잡아 갈지자로 달렸지만 조금 익숙해지니 주변 경관이 차츰 눈에 들어온다. 지도 앱으로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서 서울 송파구 가든파이브까지 자전거로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니 14분이었다. 자동차와 비교해 불과 1~2분 차이밖엔 나지 않았다. 대중교통보다는 오히려 빠르다. 출발·도착지에서 정류장까지 걸어갈 필요가 없어서다.
환경에 좋고, 몸에도 좋은 자전거인데 최근에는 감염병에서 안전한 교통수단으로도 주목받는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출퇴근길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소독을 철저히 해도 누가 탔을지 모르는 대중교통은 아무래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5일 출근길에 만난 한 자전거 출퇴근족(자출족)은 “바람을 쐬면서 가니 기분이 좋고, 혼자 타고 가니 안심이 된다”면서 “교통비도 안 들고 운동도 된다”고 말했다. 자전거로 집에서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15분. 버스를 이용할 때보다 빠르다. 코로나19가 퍼지자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타기 시작했는데 최근 자전거를 샀다. 주변에서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꽤 된다고 전했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교통수단’으로 주목
직장인 한승헌씨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자출족’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4월부터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했는데 서울 방배동 집에서 여의도에 있는 회사까지 ‘도어 투 도어’로 25분 걸린다. 버스를 타면 40분이 걸리는 거리이다. 한씨는 “코로나19로 다니던 헬스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운동을 못 하게 되자 자전거라도 타자는 생각에 장인어른의 자전거를 빌려 타기 시작했다”면서 “한강변을 달리면서 사람 보는 맛이 있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땀을 안 흘릴 정도로 천천히 달리지만 운동 효과는 확실했다. 살이 빠지진 않았지만 함께 등산하는 동료에게서 종아리에 못 보던 잔근육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다리 힘이 좋아진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한씨는 “여의도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지만, 중간에 간헐적으로 끊긴 곳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헌씨(36)는 지난 5월부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다. 서울 행당동 집을 나서 여의도에 있는 회사까지 약 50분 정도 걸린다. 지하철을 타면 40분, 택시를 이용하면 30~40분이 걸리는 거리이다. 김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만원 지하철이나 만원 버스를 위험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면서 “자전거는 야외에서 타인과 거리를 두고 이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강공원 주변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고,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 놓쳤던 동네 곳곳의 맛집이나 가게를 찾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혈압이 있어서 약을 먹는 중인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날이 늘면서 혈압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자전거로 출근하면 땀에 젖어 샤워와 환복이 필요하고, 비가 오면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한강 주변으로 자전거도로가 잘되어 있지만, 한강 주변을 빠져나와 집까지 가는 길목은 자전거도로가 없어서 위험하다는 말도 더했다.
코로나19 이후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나는 경향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카카오에 따르면 겨울로 접어들며 감소했던 카카오맵의 ‘자전거 길 찾기’ 기능 이용자 수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3월 첫 주부터 자전거 길 찾기 실행 수는 가파르게 증가해 4월 첫 주부터 8월 둘째 주까지 1월 첫 주 대비 10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다. 단, 정부의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된 8월 둘째 주부터는 감소세를 보였다.
자전거로 어디든 막힘없이 가고 싶다
국내 전체 자전거 이용자 규모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는 자전거 등록제를 택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공유자전거 이용자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자전거 이용량이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7월 사이 따릉이 월별 대여 건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최고 69%의 증가율을 보였다. 역대 가장 긴 장마가 있었던 지난 8월에만 전년 동기 대비 17.5% 감소했다. 카카오의 설명처럼 물리적 거리 두기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따릉이의 시간대별 이용 건수를 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오전 7~9시 사이, 오후 6~8시 사이의 출퇴근 시간대 이용이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자전거 판매량도 늘어 삼천리자전거는 올 상반기 매출(770억원)과 영업이익(106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5%, 507%씩 증가했다. 북미·유럽의 자전거 판매량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도로운영·보행교통연구팀 팀장은 “비대면 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사람을 중심으로 자전거를 구매하거나 공유자전거를 이용하는 경우가 크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전거 길 찾기 늘고 자전거 판매도 증가
서울시는 올해를 ‘사람 중심의 자전거 혁명’의 원년으로 삼았다. 현재 940㎞ 규모인 자전거도로를 2030년까지 총 1330㎞로 늘려 서울 도심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방사형 간선망’과 지역을 연결하는 ‘순환형 지선망’을 구축해 서울을 ‘자전거 1시간 생활권’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한강대로(4.2㎞)와 청계천로(왕복 11.88㎞)에 총 16㎞의 간선도로망을 구축하고, 기존 6개 교량에 이어 양화·동작 등 6개 교량에도 7.2㎞ 자전거전용도로를 추가 신설한다. 성북천·정릉천·중랑천 자전거도로는 청계천 자전거도로와 연결한다.
서울시는 주요 간선망을 확정하는 ‘자전거전용도로(CRT) 기본계획’을 이달 발표한다. 배덕환 서울시 자전거정책과장은 “자전거전용도로율(현재 1.9%)과 교통수단분담률(현재 1.7%)을 2030년까지 자전거 선진국 수준인 7%, 15%까지 각각 높일 계획”이라면서 “서울 시내 어디든 자전거로 1시간대에 다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전거전용도로를 확보하기 위한 도로 다이어트도 시행한다. 차선의 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도심의 차량 속도를 시속 50㎞로 줄일 경우 차선의 폭을 최소 폭인 3m로 할 수 있다. 현재 차로 폭이 3.5m라면 3개 차선의 폭을 0.5m씩 줄이면 자전거전용도로를 위한 최소 너비인 1.5m를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차로 수를 줄이는 방식은 차량 흐름을 방해할 수 있어 세종대로 등 차선이 많은 일부 구간에만 적용할 계획이다. 교량의 경우 도로 다이어트가 어려울 경우 도로 아래에 데크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든다.
자전거로 어디든 막힘없이 가고 싶다
대중교통과 연계해 자전거도로 촘촘히
기자의 경우 집에서 서울 중구에 있는 회사까지 자전거로 약 1시간 40분이 걸린다. 1시간~1시간 20분인 대중교통과 비교하면 꽤 차이가 있다. 긴 시간 동안 자전거로 다닐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최대 40분이 더 걸리는 출근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자전거로만 다니기엔 무리가 있을 경우 대중교통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서울시는 9월 1일부터 2개월간 평일 낮에 지하철에 자전거를 휴대 승차할 수 있는 시범사업을 7호선·경춘선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택시나 버스 뒤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거치대를 만드는 사업도 이미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다만 출퇴근에만 중심을 두기보다 생활권에서의 자전거 활용을 높이는 전략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양승우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선이라 할 수 있는 생활권에서의 자전거도로를 더 촘촘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출족을 제외하고 자전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교하는 학생과 장을 보러 나선 사람들을 위해 작은 생활권 안에서 자전거도로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우리의 자전거도로 체계는 대로를 중심으로 짜여 있어서 큰 도로변에 있지 않은 학교나 마트, 시장 등을 이용하기 쉽지 않다”면서 “자전거도로의 연장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이용자들이 자주 가는 생활권의 핵심 목적지를 차 대신 자전거로 다녀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희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3~5㎞ 통행이 대부분이고, 기차역을 중심으로 작은 규모로 도시가 형성된 유럽과 우린 자전거 이용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니기 부담되지 않는 통행 반경을 고려해 자전거도로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자전거 인프라를 확충하려면 자전거 타기 좋아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한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전거와 그와 유사한 전동킥보드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를 권역 내에서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자전거 출퇴근에 첫발을 디디기란 쉽지 않다. 자전거 이용자를 늘리기 위한 관건은 안전이라는 뜻이다. 북미권 국가에서는 우리의 자전거전용차로와 유사한 자전거도로를 ‘보호받는 자전거 길(Protected Bike Lane)’이라는 사업으로 추진한 후 자전거 이용자가 크게 증가했다. 우리도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해 자전거전용차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자전거는 ‘도로교통에 관한 조약’에 서명한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차’로 규정되고 있다. 그래서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고 차도로 통행할 의무, 보행자 보호 의무, 역주행 금지 등 모든 규칙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 중심의 문화 속에서 자전거는 늘 불안한 동행을 해야 한다. 자전거우선도로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도 많다.
서울시 CRT 최종 계획지도
자전거 이용 안전한 환경 먼저 만들어야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자전거도로가 없을 경우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에 붙어서 통행하게 된다. 좌회전할 경우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로 붙어 서행하면서 교차로의 가장자리 부분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규정이 오히려 자전거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성 없는 조항이라고 지적한다. 가장자리로 붙어 달리게 하면서 자동차의 추월을 용이하게 하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측으로 달리던 자전거가 몇 개의 차선을 가로질러 좌회전을 하기란 사실상 어렵고, 맞은편에서 좌회전하는 차량과 부딪칠 위험도 높다.
우승국 팀장은 “유럽은 자전거가 도로 가운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우린 도로교통법에서 우측에 붙어서 가도록 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자전거가 차로 가운데를 이용하면 뒤에서 차가 경적을 울리고 위협적으로 지나쳐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전거가 당당하게 교통수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운전자 소양 부족을 탓하기 전에 법으로 도로 가운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존 자전거도로 관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로 관리가 되지 않아 움팬 곳이나 홍수로 깨진 도로도 있고, 차량 진입을 막는 ‘볼라드’가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는 위치에 박힌 곳도 많다고 전했다.
대로변에서 우회전해서 들어오는 차량은 없는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양승우 교수는 “차가 우회전해서 건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입구가 자전거도로를 끊어먹는 경우가 많고, 왼쪽에서 차가 우회전해서 들어오는지 확인해야 하는 불안감이 크다”면서 “차량이 큰 도로에서 건물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이면도로를 통해 돌아서 건물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자전거가 좌회전하려면 왼손을 들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쭉 이동한 후 좌회전 신호를 받고 돌아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도로에 차가 별로 없어야 가능한 일”이라면서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든다면 유럽처럼 자전거를 위한 신호등도 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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